섬은 사람과 문화를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외부의 변화로부터 고유한 문화를 지켜내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진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9월 18일 오후 6시 진도향토문화회관 일원에서 ‘2026 진도국제무형문화축전’ 개막식이 열리면서 사흘간 진도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국내외에 알리는 축전의 막이 올랐다.
이번 축전의 주제는 ‘삶의 줄, 열두 매듭’이다. 탄생과 성장, 만남과 이별 등 인간의 삶의 순간마다 함께해 온 진도의 무형유산을 되돌아보고, 국내외 무형유산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진도는 오늘날 연륙교가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됐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섬이었다. 특히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진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목포까지 이동한 뒤 다시 열차를 이용해야 했다. 당시 여객선으로 목포까지 가는 데만 3시간 30분가량이 걸릴 정도로 진도는 육지와 떨어진 생활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고립은 역설적으로 진도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고 이어지는 토대가 됐다.
외부 문화와 문명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만큼 진도 사람들은 섬 안에서 삶의 방식과 공동체 문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고, 그것은 소리와 춤, 굿과 놀이 등 다양한 형태의 무형유산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진도씻김굿과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등이 진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진도의 역사 역시 섬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맞선 항쟁 과정에서도 진도는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었으며,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외부 세계와의 거리가 만들어낸 고유한 생활문화와 함께 역사적 격변을 거치며 축적된 기억이 오늘날 진도 문화의 층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축전은 바로 이러한 진도의 문화적 자산을 단순히 지역의 전통으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무형유산의 장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막식에서는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식전 공연과 풍물판굿에 이어 주제공연 ‘서천꽃밭’이 펼쳐졌다. 씻김굿의 소리와 연주, 무용을 결합한 공연을 통해 삶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로해 온 진도 무형유산의 의미를 표현했다.
이어 진도의 문화예술을 싣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은 ‘진도예술선’ 출항 세리머니가 진행됐다. 이재각 진도군수의 개막 선언에 맞춰 관객들이 “돛을 올려라”를 함께 외치며 축전의 시작을 알렸다.
축하 무대에는 케이락컴퍼니의 연주와 프로젝트 루미너리의 공중 공연, 가수 김연자의 공연 등이 이어지며 개막식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재각 진도군수는 “진도의 무형유산은 군민의 삶 속에서 함께 기뻐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이어져 온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번 축전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무형유산의 가치를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도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다리가 놓이고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면서 진도와 육지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섬이 오랜 세월 지켜온 문화적 정체성까지 사라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육지와 연결된 지금이야말로 과거 섬이라는 공간 속에서 형성되고 보존돼 온 진도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다.
이번 국제무형문화축전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도아리랑의 가락과 씻김굿의 소리, 강강술래와 낙화놀이, 구음 시나위에 담긴 진도의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한 지역 공동체가 오랜 세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견디며 만들어 온 문화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2026 진도국제무형문화축전은 9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축전 기간 국내외 무형유산 공연을 비롯해 진도씻김굿, 낙화놀이와 구음 시나위의 협연, 강강술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한때 육지에서 가장 멀게 느껴졌던 섬 진도가 이제는 그 섬이 지켜온 문화를 싣고 세계를 향해 돛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