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 4대 항만공사 통합을 추진하면서 지역사회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광양시는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반대와 우려에도 정부가 통합을 강행하고 있다며 깊은 유감을 표하고, 통합 결정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이번 항만공사 통합 논란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나 기관 간 조직 통합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방만한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통합과 효율성’을 선택했지만, 모든 조직을 하나로 묶는 것이 과연 효율성의 유일한 해법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 조직과 산하기관에 불필요하게 중복된 기능이 존재하고 예산과 인력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조직을 정비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효율성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 가치가 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고 조직을 작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지역마다 다른 환경과 특성을 살피고,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지역과 주민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국가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것 역시 정부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책무다.
특히 항만공사는 일반적인 행정기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항만은 국가 기간시설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산업·물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어떤 화물을 취급하는지, 배후에 어떤 산업단지가 있는지, 주변 도시와 어떤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항만의 기능과 발전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산항과 인천항, 울산항, 여수광양항이 모두 항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만공사가 공공기관인 동시에 경영성과와 경쟁력을 요구받는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각 항만의 특성에 맞는 전문성과 현장 대응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통합을 통해 조직 운영의 중복을 줄이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지역별 의사결정 권한과 현장 대응력을 지나치게 약화시킨다면 새로운 비효율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광양시가 특히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여수광양항은 철강과 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와 연계된 핵심 국가산업항만이다. 단순한 물류 거점이 아니라 국가 수출입 물류와 지역경제를 동시에 뒷받침하는 산업항만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그런 여수광양항의 정책과 투자 결정권이 통합 항만공사의 중앙 조직에 집중될 경우 지역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광양시가 “광양항이 사실상 출장소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만의 경쟁력은 단순히 조직의 규모를 키우거나 관리체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항만을 둘러싼 산업구조와 물류환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있는 현장의 판단이 정책에 얼마나 신속하게 반영되느냐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행정에서 효율성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효율성이 곧 공공성은 아니다. 조직을 통합하면 중복 인력을 줄이고 관리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의사결정 체계를 단순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의사결정권이 축소되고 지역의 특수성이 정책에서 배제된다면, 조직 차원에서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지역사회에는 오히려 새로운 비효율과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 정책은 기업 경영과 달리 손익계산서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많다. 기업이라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할 수 있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은 수익성이 낮더라도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효율성을 이유로 모든 것을 통합하고 집중한다면 그 과정에서 반드시 목소리를 잃는 지역과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효율성과 지역 자율성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따라서 항만공사 통합 논의에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통합 찬반 논쟁을 넘어선 현실적인 대안이다. 4개 항만공사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더라도 항만별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보장하고, 지역별 투자와 개발계획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여수광양항처럼 국가 기간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된 항만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역본부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항만 운영과 투자 결정에 지역사회와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통합의 목적이 진정으로 국가 항만의 경쟁력 강화라면 중앙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보다 통합을 통한 규모의 효율성과 지역의 전문성을 동시에 살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광양시 역시 이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성현 광양시장은 여수광양항의 의사결정 권한과 현장 대응력이 약화돼 광양항이 사실상 출장소처럼 운영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통합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도록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지역사회의 뜻을 모아 적극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 항만공사 통합 논란은 윤석열 정부 이후가 아니라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효율화 정책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국가 조직과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방향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구하는 효율성이 중앙집중과 조직 통합으로만 구현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효율성은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조직과 지역이 가진 장점을 살려 국가 전체의 성과를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4개 항만공사가 하나로 통합됐을 때 관리비용이 줄어드는 것만을 효율성이라고 본다면 통합 이후 광양항의 투자 결정이 늦어지고 현장 대응력이 떨어지는 비용은 계산에서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지역의 결정권을 일정 부분 보장하면서 중복되는 행정과 경영 기능만 통합한다면 규모의 효율성과 지역의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항만공사 통합의 성패는 ‘하나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로 만들면서 무엇을 잃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이제 지역사회의 반발을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광양시가 제기하는 문제 역시 특정 지역의 밥그릇을 지키자는 주장이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항만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효율성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공공정책에서 효율성이 모든 가치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항만공사 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통합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효과를 지역사회에 충분히 설명하고, 통합 이후에도 각 항만의 특수성과 전문성, 그리고 지역의 실질적인 결정권이 보장되는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효율성을 얻기 위해 지역의 경쟁력과 자율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통합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비효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