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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NN, 전 ‘정신대 피해여성’ 공포의 시간을 전하다
한국 여성사의 가장 어두운 역사 덮으려 해
기사입력: 2016/01/04 [13:52] wid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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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미 기자

[플러스코리아타임즈 = 김일미 기자]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는 위안부 전시성노예 피해여성들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를 맺었다. 이에 국내외 여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다. 특히, 피해 여성들과는 아무런 대화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데 대해 비난의 소리가 높다.

 

▲ 정신대 피해여성     © 김일미 기자

 

CNN은 12월 29일 90세 고령의 이옥선 할머니를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내며, 당시 14세의 나이로 끌려가 고문, 구타, 강간을 당한 이 할머니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했다. CNN은 약 20만 명의 여성들이 성노예로 착취당했고, 이 상처는 합의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CNN은 아울러 “일왕이 우리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자기들이 한 일을 반성하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주기를 바란다”는 이 할머니의 말을 전하며 이 할머니의 전쟁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CNN 영상의 스크립트이다.

스크립트 & 번역 : 양수빈 기자

영상 바로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_Ty44VQl7pQ

 

Former ‘comfort woman’ recalls horrors

전 ‘위안부 여성’이 공포의 시간을 회상하다

 

This is her war story. The capture, she was fourteen.

 

이것은 그녀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납치는 그녀가 14세일 때 일어났습니다.

 

“One grabbed me by my legs. And one grabbed me by my arms. And they threw me into the back of the truck. I flew high and landed hard. There were about five women sitting there.”

 

“한 명이 내 다리를, 다른 한 명은 내 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트럭 뒤편으로 던졌습니다. 나는 높이 떴다가 세게 떨어졌습니다. 약 5명의 여성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Then, forced labor. Routine beatings. And when Yi Ok-sun later arrives at the so-called wartime comfort station, relentless rape.

 

그리고는, 강제 노동, 일상적인 구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옥선 할머니가 소위 전시 위안소에 도착했을 때는 무자비한 강간이 있었습니다.

 

“They would use guns and swords to threaten us. They would shoot and they would cut. How is this a comfort station? It was an execution ground.”

 

“그들은 총과 칼을 사용해서 우리를 위협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총을 쐈고, 칼로 베었습니다. 이곳이 어떻게 위안소입니까? 그곳은 사형장이었습니다.”

 

Forty or 50 Japanese soldiers a day for some women, she says, the girls really. By the time this photo was taken of Yi at 21, she’s been missing from her home in Korea for so long, her own government has declared her dead.

 

사실상 소녀들이었던 이들 여성들은 하루에 40명 혹은 50명의 일본군을 받았습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 이옥선 할머니는 21살이었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실종된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녀의 모국인 한국 정부는 그녀를 사망 신고한 상태였습니다.

 

This wedding never happened. The graduation didn’t, either. They are just photos she took. They are symbols of what might have been a life taken from one of the so-called comfort women forced into sex slavery by the Japanese military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re are estimates there may have been as many as 200,000 of them.

 

이 결혼은 실제로 있지 않았습니다. 졸업식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찍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 사진들은 2차 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강요됐던 소위 위안부 여성 중 한 명의 빼앗긴 인생에서 일어났을 수 있는 일들의 상징일 뿐입니다. 20만 명의 위안부 여성이 있었으리라 추정합니다.

 

Today, there are about a dozen women who live here. This is an hour south of Seoul. It is shelter that’s intended to be really more of a sanctuary. It’s one place where there is care around the clock for comfort women. Here, Yi is surrounded by some of the few surviving sisters who share her battle wounds.

 

오늘날, 이곳에는 약 12명의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곳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의 거리입니다. 여기는 할머니들의 보호소인데, 실제로는 기념관 같은 장소입니다. 이곳은 24시간 내내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여기서 이 할머니는 그녀와 전쟁의 상처를 나누는 몇몇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계십니다.

 

For a lot of these women, this is the place that really does feel like home. There are no families to take care of them, no families to one day mourn them. So, some of them are cremated and even buried here, in a spot where they can be remembered.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곳은 집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 할머니들에게는 자신들을 돌봐줄 가족도, 돌아가신 후에 애도할 가족들도 없습니다. 그래서 몇몇 분은 화장되어 이곳, 그분들이 기억될 수 있는 이곳에 묻히기까지 했습니다.

 

70 years after her ordeal there is nothing Yi forgets.

 

이 할머니의 시련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The military police said they would need to cut off her foot so that she couldn’t escape. They cut my foot.”

“군인 경찰은 이 할머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녀의 발을 잘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발을 칼로 벴습니다.”

 

A scar that a historic handshake won’t heal. South Korea is agreeing to close the book on its women’s darkest chapter, announcing an irreversible resolution to its longstanding conflict with Japan over the use of comfort women. They are accepting a final apology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and 8 million dollars for foundation that will help support the 46 living women.

 

이것은 역사적인 악수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입니다. 한국은 일본과 위안부 여성을 두고 오랫동안 가져온 갈등에 “불가역적인 해결”을 표명하며, 한국 여성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정부로부터 최종적 사과를 받고, 800만 달러를 받아 생존한 46명의 할머니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려 합니다.

 

For Yi and others, the apology is too vague. They say it doesn’t adequately document the history, the abuse they suffered at the hands of the Japanese government.

 

이옥선 할머니와 다른 할머니들에게, 이 사과는 너무 모호합니다. 할머니들은 그 사과가 그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고통의 역사를 충분히 기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I want the emperor of Japan to come to us and get down on his knees in front of us and then reflect on what they’ve done and explain what actually happened. They are waiting for us old grannies to die. I want to meet a good husband and live a happy life before dying.”

 

“나는 일왕이 우리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자기들이 한 일을 반성하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 할머니들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Yi is almost 90 now. She keeps telling the war story because she knows it’s more than her story. Alexandra Field CNN, Gwangju.

 

이 할머니는 이제 거의 90세입니다. 할머니는 전쟁 경험을 계속 증언하십니다. 그 이야기가 할머니의 이야기 이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CNN의 알렉산드라 필드가 광주에서 보도합니다.

 


원본 기사 보기: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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