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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블룸버그 뷰, 위안부 사과, 정의 아니다!
아베, 일본의 국가적 이익 위해 협상 타결 나서
기사입력: 2016/01/04 [11:52] wid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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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미 기자

 

[플러스코리아타임즈 = 김일미 기자] 블룸버그 뷰에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협상 타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이번 한일 협상 타결의 배후에 대한 지정학적 해석에 대해 국내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은 칼럼이 게재되 눈길을 끌었다.

 

블룸버그 뷰는 일본군의 위안부에 행한 반인륜적 범죄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범죄들이 잊혀져서는 안 되며 그러한 범죄들을 논의하고 추모하는 것이 억압되거나 방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전제한 뒤 ‘(피해자들의) 정부가 그 문제를 잃어버리자 합의를 해주고 심지어는 가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시도를 그만두도록 피해 여성들을 종용해주는 대가로 이들이 보상을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번 협상 타결의 부당함에 대해 지적했다.

 

블룸버그 뷰는 28일 하버드 대학교의 헌법과 국제법 교수 Noah Feldman이 쓴 칼럼에서 제목부터 ‘Apology Isn’t Justice for Korea’s ‘Comfort Women’-사과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위안부 범죄를 “도의적 관점에서, 반인륜적 범죄는 자동차 사고와 같지 않으며 2차대전 당시 여성들을 노예화한 가해자들은 부주의로 인한 과실을 범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한 뒤 ‘그들은 이 특정 피해 여성들을 강간하고 인간성을 훼손했으며,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지위와 기본적 권리를 짓밟았다’고 일본의 범죄행위를 규탄했다.

 

이어 블룸버그 뷰는 “사과와 보상을 주는 조건으로 그와 같은 범죄에 대해 침묵하기로 약속하는 것은 범죄 행위의 규모와 의미에 비추어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안부 여성들이 받은 처우에 관해 우리가 느끼는 경악은 이슬람 국가와 보코 하람에 의해 납치된 여성들을 대신해 우리가 행동하도록 해주며 아무리 과거와 화해를 한다 해도 그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그러한 범죄들과 화해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

 

특히 블룸버그 뷰는 이번 한일 간의 협상 타결 배경에 대해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는 한국의 해석과는 달리 일본의 아베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움직였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한국 언론을 비롯한 한국 측 해석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일본, 한국과의 동맹을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으로 인한 한일관계의 회복을 위해 미국이 강하게 압력을 가해온 것을 배경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 뷰는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아베 총리를 움직인 것은 일본의 국가 안보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블룸버그 뷰는 아베가 미국이 그동안 해온 동아시아에서의 보호자 역할을 더 이상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책임감을 확신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필요하게 됐다며 아베는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인 위안부 문제 타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아베는 사과와 보상금을 내놓았으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타결됐고 다시금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약조가 그 대가였다고 블룸버그 뷰는 분석했다. 즉 아베는 이제 일본이 공격적이거나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대두되었던 위안부 문제를 타결해 한국 정부를 침묵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아베가 위안부 협상 타결을 밀어붙인 배경을 설파했다.

 

아베의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에 박근혜 정부가 멍청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외신의 눈에도 이 정의롭지 않은 협상 타결이 일본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긴 승자로, 한국은 다 퍼주고도 자국민조차 지켜주지 못한 못난 패자로 확실히 보이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블룸버그 뷰의 칼럼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v.ms/1PvhOxS

Apology Isn’t Justice for Korea’s ‘Comfort Women’

사과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가 아니다

DEC 28, 2015 5:30 PM EST
By Noah Fel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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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long last, Korea’s “comfort women” are getting a real apology from Japan’s government for being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army during World War II. But the moment is bittersweet, and not just because it’s taken 70 years. The apology comes not out of a change in Japanese sentiment, but from a change in geopolitics — namely, the rise of China and the increasing need for Japan and South Korea to cooperate on mutual defense. And it comes at the price of a promise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not to criticize Japan over the issue again — a trade of moral claims for compensation and finality.

 

마침내 한국 “위안부 여성”들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강요받은 데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진짜 사과를 받는다. 하지만 그 순간은 씁쓸하다. 70년이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과는 일본의 정서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정학적 변화, 즉 중국의 세력이 커지고 한일 양국이 상호 수비를 위해 협조해야 할 필요 역시 커진 데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과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로 다시는 일본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대가를 수반한다 — 즉 도의적 책임 요구를 보상금과 최종 결정으로 맞바꿔버렸다.

 

The saga of the Japanese non-apology has had many twists and turns, demonstrating that in the contemporary political cultures of both Japan and Korea, apologies aren’t mere formalities but are laden with symbolic significance. A muted 1993 apology was accompanied by compensation from private donors and marked a refusal by Japan’s government to acknowledge its role in the sexual enslavement. Koreans got the point, and some women refused to take money from the fund.

 

사과를 거부해 온 일본 정부의 최근 역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가운데 한일 현 정치 문화에서 사과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이에 담겨 있음을 보여주었다. 1993년 미약한 사과가 있었을 때 민간 차원의 후원에 의한 보상금이 지급됐고, 일본 정부는 성노예를 강요한 행위에 정부가 개입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했고 일부 피해 여성들은 그 기금으로 지급되는 돈을 거부했다.

 

The question of state responsibility has remained a sore point. A South Korean historian who has written about the role of private entrepreneurs in enslaving women during the war has been condemned by survivors who say she is minimizing the Japanese government’s guilt.

 

국가적 책임의 여부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이다. 전시 여성들의 성노예화에 있어서 민간 기업들의 역할에 대해 책을 낸 한 한국 역사학자는 일본 정부의 죄를 최소화하려 한다며 생존 피해 여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Minister Shinzo Abe, a strong nationalist, isn’t naturally inclined to apologize for Japan’s wartime atrocities. In the past, he’s angered Chinese and Koreans by visiting the controversial Yasukuni shrine, which honors Japan’s war dead, including convicted war criminals.

 

열렬한 국가주의자인 아베 총리는 당연하게도 일본의 전시 잔학행위에 대해 사과하기를 꺼린다. 과거 그는 일본의 전범을 포함한 전사자를 기리는 논란 많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중국과 한국을 분노케 한 적도 있다.

 

What motivates Abe is the quest to improve Japan’s national security. China’s military expansionism is the main cause. Almost equally important is an accompanying perception that the U.S. may not be the strong protector it has traditionally been. Would the U.S. go to war to defend Taiwan from China? If the answer is no, then why would the U.S. go to war to protect Japan or South Korea? If there’s doubt about the U.S. commitment, Japan and Korea need each other.

 

아베 총리를 움직인 것은 일본의 국가 안보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바람이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이 주된 원인이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그래 왔던 것처럼 강력한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수적 인식도 거의 똑같이 중요하다. 과연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지켜주기 위해 전쟁에 나설까? 만약 이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라면 미국이 일본이나 한국을 위해 전쟁을 선포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책임감을 확신할 수 없다면 일본과 한국은 서로가 필요하다.

 

The Pacific security arrangement is often described as a “hub and spokes” model, with the U.S. at the center. Abe is setting out to strengthen the ties between the spokes — because he recognizes that the hub is not as willing a gravitational force as it once was.

 

태평양안전보장조약은 흔히 미국을 중심에 둔 “허브 앤 스포크” 모델(역주: 중심이 되는 허브(또는 중심점)을 두고 수많은 지점이 각각 중심점으로부터 바퀴살처럼 연결되는 항공수송 방식)로 묘사된다. 허브의 중력이 전처럼 자발적이 아님을 인식하자, 아베 총리는 스포크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In this increasingly uncertain Cool War environment, the perception of Japanese-Korean solidarity is an important aspect of Abe’s program. It’s why he was willing to pay the political price at home of an apology to the comfort women that accompanies an $8.3 million fund — this time paid by his government. And as a nationalist, he can afford to draw on his store of right-wing credibility to buy political advantage.

 

갈수록 더 불확실한 이와 같은 쿨 워(Cool War)의 환경에서 한일 연대는 아베 총리의 계획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 때문에 그는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830만 달러 보상금 -이번에는 국고에서 지급하는 -으로 인한 정치적 대가를 자신의 나라에서 기꺼이 치르고자 했다. 그리고 국가주의자로서 그는 자신이 비축해 놓은 우익의 신용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사들일 만한 여유가 있다.

 

But the apology and the money came with a price attached: South Korea’s promise that the issue of the comfort women would be settled once and for all, and that its government wouldn’t complain about it further. And Abe can tell his constituents that he has bought the Koreans’ silence, removing an argument that always came up when Japan was accused of being aggressive or nationalist.

 

하지만 사과와 보상금에는 대가가 따랐다.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타결됐으며 다시금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약조가 그 대가였다. 또한 아베 총리는 이제 일본이 공격적이거나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대두되었던 위안부 문제를 타결해 한국 정부를 침묵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됐다.

 

That’s almost always how reparations, whether legally formal or (as in this case) informal, work in the real world: The wronged party gets compensation and an apology; the party that did the wrong gets a de facto promise that it won’t have to be reminded of what it did. Without this trade, countries wouldn’t voluntarily pay up, so it may seem naive to criticize the exchange, provided you think compensation is a good thing.

 

법적으로 공식적이냐 (이번 사례의 경우처럼) 비공식적이냐를 막론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항상 이러한 방식으로 보상 절차가 진행된다. 피해자는 보상과 사과를 받고, 잘못된 행위를 한 측은 자신이 행한 행위를 다시 상기시키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약조를 받는다. 이러한 거래 없이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보상금 지급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거래를 한 것을 두고 비판하는 것이 다소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물론 보상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는 가정하에서 그렇다.

 

All tort settlements, even those between private parties, have something of this character. Compensation functions as corrective justice, and the injured party is expected to be satisfied by the deal.

 

모든 불법 행위의 해결, 심지어 개인 간에 벌어진 불법 행위를 해결 짓는 일조차도 이와 유사함을 보인다. 보상은 교정적 정의의 기능을 가지며 피해자는 이 거래로서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But morally speaking, crimes against humanity aren’t the same as car accidents. Those who enslaved women during World War II weren’t being negligent; they raped and dehumanized these women in particular, and the status and fundamental rights of women everywhere.

 

하지만 도의적 관점에서, 반인륜적 범죄는 자동차 사고와 같지 않다. 2차대전 당시 여성들을 노예화한 가해자들은 부주의로 인한 과실을 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특정 피해 여성들을 강간하고 인간성을 훼손했으며,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지위와 기본적 권리를 짓밟았다.

 

Promising a form of silence about such crimes in exchange for an apology and compensation seems inadequate to the scope and meaning of the wrongdoing. During negotiations, Japan also sought the removal of a memorial statue in front of its embassy in Seoul. South Korea’s government promised to take up the issue with the survivors – implying a good-faith effort to make the memorial disappear.

 

사과와 보상을 주는 조건으로 그와 같은 범죄에 대해 침묵하기로 약속하는 것은 범죄 행위의 규모와 의미에 비추어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은 또한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그 문제를 생존 피해 여성들과 의논하겠다고 약속하며 소녀상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Crimes against humanity are the world’s business. They shouldn’t be forgotten, and discussing as well as memorializing them shouldn’t be suppressed or discouraged.

 

반인륜적 범죄는 전 세계적 문제이다. 그러한 범죄들이 잊혀져서는 안 되며 그러한 범죄들을 논의하고 추모하는 것이 억압되거나 방해되어서는 안된다.

 

The interest in keeping the memory of such crimes alive also extends to the victims themselves. Of course they’re entitled to compensation. But it feels wrong if they can only get it because their government has agreed to drop their case and, to a degree, is encouraging them to drop their efforts to shame the perpetrators.

 

그러한 범죄들의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일은 희생자들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물론 그들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부가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합의를 해주고 심지어는 가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시도를 그만두도록 피해 여성들을 종용해주는 대가로 이들이 보상을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The realities of international practice are inevitable and harsh. Individuals need states to prosecute claims against other states on their behalf. And once states are in the game, they’ll behave as states usually do: trading values and ideals and honor for advancement of their interests. But that doesn’t mean we always have to like it. The memory of terrible wrongs should be preserved, as a goad to stop them from happening again.

 

국제적 관행의 현실은 불가피하고 가혹하다. 개인들은 다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자신들을 대신해줄 국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단 국가가 개입되면 국가들은 흔히 그렇듯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여 가치와 이상과 명예를 거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결과를 다 좋아할 필요는 없다. 끔찍한 범죄행위에 대한 기억은 그런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극제로서 보존되어야 한다.

 

Our horror about the treatment of the comfort women should steel us to act on behalf of women kidnapped into sexual slavery by Islamic State and Boko Haram. No amount of reconciliation with the past should make us reconcile with those crimes of the present.

 

위안부 여성들이 받은 처우에 관해 우리가 느끼는 경악은 이슬람 국가와 보코 하람에 의해 납치된 여성들을 대신해 우리가 행동하도록 해준다. 아무리 과거와 화해를 한다 해도 그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그러한 범죄들과 화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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