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은 한 목재에 새겨진 작은 글자와 표식들이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새롭게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소장 이은석)는 한국 수중발굴 50주년을 맞아 15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바다를 건넌 나무, 자단」 특별전을 열고, 14세기 신안선에서 출수된 자단목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개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그동안 단순한 숫자나 알파벳 등으로 여겨졌던 자단목의 음각 표식 가운데 일부가 원(元) 제국의 공식 문자인 ‘파스파 문자’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낸 것이다. 파스파 문자는 원나라 때 몽골 제국의 행정과 통치, 외교 등을 위해 만들어져 사용된 문자다. 이번에 새롭게 판독된 자단목 6점에서는 파스파 문자 ‘지(ǰi)’가 확인됐다.
그렇다면 왜 700년 전 일본으로 향하던 목재에 원나라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을까? 연구진은 이 표식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당시 화물의 관리와 검수 과정에서 사용된 공적 표식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즉 오늘날 화물에 붙이는 관리번호나 검수표시처럼, 당시에도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물품을 관리하기 위해 일정한 표식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는 자단목에 새겨진 한자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더욱 구체적인 화물 관리체계를 밝혀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한자가 새겨진 자단목은 약 160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천삼(天三)’, ‘천육(天六)’, ‘황오(黃五)’, ‘주칠호(宙柒號)’ 등의 표식이 확인됐다. 여기에는 공통적인 규칙이 있다. ‘천(天)·황(黃)·주(宙)’는 중국의 전통적인 문자 학습서인 천자문(千字文)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글자다. 여기에 숫자나 ‘호(號)’ 등이 결합돼 있다.
이는 단순히 목재에 아무 글자나 새긴 것이 아니라, 천자문의 글자를 일종의 분류기호로 사용하고 뒤에 숫자를 붙여 화물의 순서를 표시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물류창고에서 물품마다 품목번호와 일련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단목에 새겨진 표식이 신안선에서 함께 발견된 목간(木簡)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목간은 당시 화물의 종류나 수량 등을 기록해 화물에 매달아 놓은 일종의 꼬리표다. 신안선에서는 ‘まこ三郎[마코사부로]’, ‘いや二らう[이야지로]’ 등 일본 가나 문자로 기록된 인명과 서명 형태의 수결(手決)도 발견됐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인명과 수결이 자단목에서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화물에 표시를 해놓은 것이 아니라, 화물에 매단 목간과 화물 자체에 새긴 표식을 서로 대조해 검수하고 인수하는 체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700년 전 신안선의 화물에는 오늘날의 ‘화물표’와 ‘상품 자체의 관리번호’에 해당하는 정보가 함께 존재했던 셈이다.
이러한 발견은 신안선이 단순히 중국에서 일본으로 물건을 운반하던 선박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 해상무역망 속에서 체계적인 화물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특히 신안선의 최종 목적지가 일본 도후쿠지(東福寺) 등이었다는 점에서 일본 현지 관계자들이 단순한 구매자를 넘어 화물의 선적과 유통 과정에도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연구에서 자단목이 중요한 이유는 목재 자체의 가치뿐만이 아니다. 자단목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 고급 목재로, 14세기 당시에도 국제적으로 유통되던 상품이었다. 따라서 신안선의 자단목에 남아 있는 작은 글자와 기호들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어디에서 가져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화물의 기록’인 셈이다.
바닷속에서 발견된 나무 한 조각이 700년 전 사람들의 무역 활동을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이번 특별전에서 자단목의 3차원 디지털 정밀 기록화 과정에서 확인된 문자와 문양을 비롯해 파스파 문자, 천자문을 활용한 화물 관리기호, 목간과 자단목의 표식 비교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공개한다.
특별전 개막 다음 날인 16일에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사회교육관에서 ‘신안선 자단목과 동아시아 해양교류’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도 열린다. 국내외 연구자들은 자단목의 수종과 산지, 당시의 유통·무역 구조, 자단목에 새겨진 표식의 의미, 중세 일본에서의 소비 양상과 제작기법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예정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특별전과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자단목을 700년 전 동아시아 물류체계를 보여주는 ‘기록 매체’로 새롭게 조명하고, 해양유산에 대한 융복합 연구를 통해 중세 해양교류사의 숨겨진 모습을 지속적으로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안선은 1976년부터 시작된 한국 수중고고학의 대표적인 발굴 유적이다. 이번 자단목 연구는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유물이 단순히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남긴 작은 기록을 통해 역사 전체를 복원할 수 있는 사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