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베트남에 남겨진 한국 국적 어린이들의 학습권 확보를 위해 베트남 속장시 관계자들과 회담하고 있다. © 강효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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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베트남에 남겨진 한국 국적 어린이들의 인권 상태를 취재하기 위해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소장 정미선)와 함께 지난 7월 8~13일 1차에 이어 2차인 8월 19~25일 2차까지 총 13일에 걸쳐 이동한 거리는 총 3000Km가 넘었다.
1차 취재는 호찌민 인근 껀터와 속장을 취재했고, 2차는 베트남 최남단 까마우와 다낭 하노이를 오가며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학교 당국자들을 만나면서 베트남의 사회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번 2차 취재지인 까마우는 베트남 최남단으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서 2016Km 떨어진 곳으로 우리 일행이 차를 타고 연속해서 이동한 시간만도 24시간이 넘었으며 한국 국적 어린이들이 있는 곳인 작은 어촌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 가까이 됐다.
베트남 최남단 작은 어촌 마을 분위기는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채 적막했다. 차가 멈춰 선 곳에 내리자 비릿한 생선 냄새와 함께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쳤고, 몇몇 현지인들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낯선 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의문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 사진=어둠 속을 가르고 조그만 배를 타고 어린이들을 찾아가는 본지와 일행들 © 강효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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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지인 어린이들이 사는 집은 배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배를 타기 위해 가는 선착장의 길목은 조그만 시장인 듯 새벽부터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의 부지런함은 베트남 여느 곳에서나 마찬가지 같다.
선착장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둠 속에서 물살을 가르는 프로펠러의 엔진소리가 들리면서 희미한 빛이 보였고, 한 사람이 머리에 쓴 랜턴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조그만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에 멈춰 선 작은 배는 우리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흔들렸고, 우리는 뒤뚱거리며 흔들리는 배에 올랐다. 얼마를 가니 어느덧 배 댈 곳도 마련되지 않은 어느 작은 마을 앞에 도착했다. 일행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곡예를 하면서 배에서 내려 어두운 밤길을 걸어 한 집에 도착했다.
그 집에는 우리가 오는 것을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한 여성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줬고, 집에 들어서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이 집에는 올해로 10살인 쌍둥이 형제가 한국 엄마와 떨어져 이모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있었다.
▲ 사진=베트남에 남겨진 10살 쌍둥이 형제와 만남(왼쪽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정미선 소장, 가운데 쌍둥이, 오른쪽 본지) © 강효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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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깨서 밖으로 나온 쌍둥이들은 두 눈을 부시지 비비면서 우리 일행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들은 말도 배우기 전에 엄마에 의해 이곳 외할머니댁에 맡겨져 벌써 10살이 되었고, 엄마가 매달 한국에서 보내주는 60만 원으로 엄마 동생 이모 애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한 달에 60만 원이면 베트남 시골에서는 그나마 풍족하게 쓸 수 있는 돈으로 이 쌍둥이들은 좋은 환경에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애들의 표정 또한 밝았다. 우리는 어떻게 쌍둥이 엄마가 한국에 시집을 가게 됐고, 아이들이 베트남에 남겨진 이유를 물었다.
이 애들도 다른 애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정보업체 소개로 베트남 엄마는 생면부지 한국으로 시집을 갔고,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이혼을 하고 애들만 베트남에 남겨 둔 채 엄마는 떠났다고 말했다.
이곳 베트남 신부들이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무슨 도움이 필요 하는가를 묻고 신학기라 필요한 학용품을 사라며 얼마의 돈의 애들에게 각각 쥐여 주고 쌍둥이 집을 나섰다.
두 번째 도착한 집은 7살 여자 어린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단 셋이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었다. 이 집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유일한 수단이 배지만 이 집은 가난해서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사진=생후 2개월 만에 베트남에 남겨진 7살 여자애가 시종일관 시선을 피하고 있다. © 강효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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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떨어져 사는 애들이 특징이 그런 것처럼 7살 여자애는 시종일관 우리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쳐다보면 그때 마다 우리의 얼굴을 피해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이제껏 할머니 할아버지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낯선 이들과 얼굴 대면조차 어려웠다.
이 7살 여자애는 생후 2개월이란 젓도 떼지 않은 아주 어린 나이에 엄마에 의해 이곳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군이 이었지만, 벌써 80을 넘긴 사람이었고, 한국에 있는 엄마는 5~6개월 한 번이나 우리 돈 60만 원 정도를 보내준 것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렵게 생활을 하면서 7살 손녀를 키우고 있었다. 더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 7살 여자애는 한국 국적이라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베트남 정부로부터 한국 국적이란 이유로 한국으로 추방된다는 것이다.
학교 공부는 고사하고, 사람과의 대면조차 힘든 여자아이가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베트남 글과 한글도 모른 채 아무런 교육과 준비도 없이 한국으로 보내진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이런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닌 것이 우리 사회의 큰 폐해요 그 폐해로 인한 피해는 우리 사회가 안아야 할 것이다.
본지가 이번 취재를 기획한 것은 단지 베트남 이주민 2세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주민 2세도 우리 국민이다. 우리 정부는 이제라도 이들의 인권 유린을 좌시하면 안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들의 인권 유린을 우리 정부는 모른 체할 것인가?
정부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책에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 남편과의 결혼을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것이 아닌 단지 한국으로 오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철없고, 죄 없는 순진한 어린애들이 엄마들의 욕심으로 배움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인권 유린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시급히 이주민 여성 가족 중 주민등록증이 발행되기 전인 16살 이하 아이들이 자신의 나라로 아이들을 데리고 출국하면 출국 전 전 반드시 아빠의 허락을 확인하고, 설사 허락을 하고 출국했다 하더라도 애들과 동반하지 않고, 귀국하면 귀국을 불허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얼마의 우리 국적의 어린이들이 현재 외국에 있으면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파악해서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대책 없이 한국으로 귀국해서 우리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번 2차 취재를 위해 협조해 주신 베트남 라이따이한 김상일 대표와 먼 거리를 동행해주 윤희남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